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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여름 안에서 톰의 사계절이야기

by 나댜나댜 2023. 3. 7.

출처 : 네이버 영화 재개봉 티저 포스터

영화 제목 : [500] days of summer, 2010년

내가 썸머 같아서, 톰이 그 친구 같아서.

2010년 여름, 한창 푸르르던 나이였고 매일매일이 설레는 대학생 1학년이었다.

같은 동아리 안에서 함께 놀며 정 반대같지만 눈이 가던 그 친구와 영화 속 조셉 고든 래빗이 외모가 닮아 보였다.

우린 '썸'을 타고 있었고 '썸머'와 '톰'의 모습도 우리를 닮았었다.

때 마침 그 시기에, 때 마침 그 영화가 개봉해서 나를 비춰낼 스토리가 생긴 게 좋았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얼버무리고 도망쳐버려서 놓치게 된 사랑이 아쉬운 

연애남녀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다. '썸머'가 나쁜 여자였는지 아닌지만 찾아가며 영화를 감상하면

영화의 20-30% 정도만 감상하여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화자가 '썸머'였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보게되면 '톰'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 바보 같고 겁쟁이 같았는지가

보이면서 이 영화의 50-60%가 보이게 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Ditto 필터를 낀 듯한 영상미와 여름과 가을을 함께 맞이해가는 계절에 걸맞게 블루와 브라운 색상이

조화롭다. 이런 영상미까지 추가한다면 70% 정도는 채운 셈이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톰'이고 그의 시선과 추측과 고집으로 만들어지는 스토리이기에 

'톰'의 의견을 들으면서 영화를 보게되는데,

마지막으로 '톰'을 지켜보는 전지적 화자 시점으로 영화를 보게되면 이 이야기는 정말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톰'의 성장 스토리다. 꼭 사랑 방면에서가 아닌, 스스로 성장하는 '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까지 감상한다면 얼추 90% 까지는 보았다고 할수 있지 않을지 모르겠다.

This is not a love story.

아,아니다 이 영화는 '연애'라는 감정을 아는 사람은 몇 백번을 봐도 색다른 감정과 옳고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꼭 100%를 맞춰두고 볼 필요는 없다. 그저 나의 연애 시기에 맞게 서투른 20대 초반, 뭔가를 알아간다고 자만하게 되는 20대 후반, 

현실이 중요하고 괜한 감정낭비가 귀찮아지는 30대 초중반까지 열린 결말이 아닌 열린 해석을 해나가는 재미가 있겠다. 

이건 썸머 입장도 들어봐야한다고 생각해. 스핀오프 버전은 없을까?

썸머는 이 영화에서 빌런이 아니다. 톰을 괴롭히려고 나온 속이 시커멓고 톰을 골려 먹으려고 나온 캐릭터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톰도 썸머도 그 누구도 절대선 절대악이 아니다. 마치 이 바쁘고 두려운게 많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

나 자신, 주변 사람들이 살아 가듯이 그들도 그렇다.

절대선의 사랑을 한다는 기본 베이스 안에서, 적당히 용기 내보고, 비겁해지기도하고, 적당히 요령도 피워보고 이기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악역은 아니고 비선역으로 비춰지는 썸머가 너무 이해가 가고, 톰도 이해가 가서 아직도 어려운 장면이 두 장면 있다.

 

1. 가라오케 회식 후 톰과 썸머가 헤어지는 장면.

톰의 친구가 취해서 썸머에게 톰이 썸머에게 관심이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셋 다 술은 마신 상태다.) 

톰은 취했다며 친구를 택시에 태워 집에 보내고, 톰과 썸머는 어색하고 머쓱한 마무리 인사를 하려 한다. 

썸머가 말한다. "저를... 좋아해요?" 

톰은 어우예예그럼요를 시전하며 친구의 주책을 무마하려한다.

썸머는 핵심을 짚는다. "단지 친구로서요?"  

이 순간 썸머의 입모양과 눈빛을 여기서 묘사하고 싶다. 동공이 커져 유난히 반짝였고, 입모양은 씰룩이며 쑥스러웠다.

관심 없는 남자한테는 다시 짚어 물어볼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녀는 일종의 플러팅을 했고 승부수를 날린 질문이었다. 

여기서 톰은 다시 찬물을 끼얹 듯, 예예 친구로서요! 라고 대답을 한다. 

톰이 "아니요,저 썸머씨에게 관심 있어요."라고 대답했다면 어땠을까? 

이 순간이 '만약에?'라는 상상으로 시작해서 마치 라라랜드의 '만약에 시퀀스' 처럼 상상을 시작하게 되는 장면이다. 

 

용기 있었음과 없음므로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잘했는지 못했는지 판단 해야한다면 서머의 완승이다. 

서머는 승부수를 던질 수 있었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게 서머가 소위 말하는 '잘난 여자'여서였을까?

물론 예쁜 건 맞지만, 회사 내에서 누가 말을 걸었는데 무시했다는 소문을 듣고 서머에게 선입견을 톰이 먼저 가져버린 게 아닐까.

그 순간 다른 데에 집중해서 듣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다 억울하다.

서머에 대한 평가가 선입견이었다는 건, 서머가 톰에게 말을 먼저 걸었다는 것으로 입증이 된다. 

이건 썸머가 '잘난 여자' 이건 아니건 톰에게 먼저 다가갔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니까.

톰은 서머를 좋아하는 마음은 컸지만, 제 때 서머의 신호를 알아듣지 못했고,

만약 알아들었다 해도 자신이 시도할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애초에 행동할 마음을 내려놓은 남자였다. 

사랑할 마음은 크지만 행동할 마음은 없는, 널 좋아하지만 널 가져보겠어 라는 단계까진 가지 않은 상태다.

이런 톰을 수동적이라고 하고 싶진 않다. 톰의 마음이 아직 거기까지였을 수 있고, 어쨌든 그 잠깐이 자기가 준비하지 않은 당황스러운 상황이니까.

그 심정도 이해는 가니까. (다만 이해는 하지, 하지만 결과는 니 책임이지.)

결국 서머는 톰의 말에 "아 나도 너랑 친구로 잘 지내고 싶었어~내일 봐!" 하고 쿨하게 뒤돌아 집에 간다.

서머가 뒤돌아 집에가서 얼마나 이불을 차며 승부수 띄운 걸 후회 했을지, 호감가는 눈빛을 다 보내놓고 친구라고 단정지어버린 톰을 얼마나 원망하고 미워했을 지, 이건 정말 썸머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2. (그 유명한) 복사실 키스신과 엘리베이터 the Smiths 신.

 

톰에게 직접 이미 친구로 좋다는 얘기를 들은 서머. 다음 날 사무실 안 복사실에서 어색하게 재회를 한다. 

안녕. 안녕. 

지지직 각자의 복사기가 돌아가고 벽만 보고 있다가 서머가 톰에게 성큼성큼 걸어서 다가간다. 

서머는 톰에게 아무 말 없이 키스를 한다. 

와정말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지 궁금하다. 아무리 서머가 개방된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썸머가 나빠서 가벼워서 라는 이유를 붙인다 하더라도, 전날 그저 친구일 뿐이라는 대답을 듣고

그렇게 다시 다가갈 용기를 낼 수도 있는, 자신의 마음을 더 표현할 수 있는 여자라는 건 분명하다. 

그저 친구라는 표면적인 거절은 했지만 서머는 톰의 눈빛과 마음을 간파했고

다시 거절당할 수 있음에도 용기를 낸 것이다. 

톰이 서머에게 아무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닌데, 이걸 서머가 먼저 톰을 헷갈리게 흔들어놨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결국 그 용기로 둘의 만남은 시작이 된다. 그 용기와 솔직함이 둘을 만나게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몇 번 더 이 영화를 보게 될지, 이젠 그만 보고 싶다. 

 

2010년 개봉 후부터 n회차 관람을 하고, 좋아하는 장면만 다시 보기를 거듭하며 

기억나는 장면의 한글 대사는 외울 정도가 되었다.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을 느꼈고 나의 이기적이었던 연애가, 혹은 나의 비겁함과 어리숙함을 위로받는 것 같았다.

500일의 기간은 연애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 연애의 시작의 설렘과 헤어지게 되는 과정만 보인다.

난 이제 사랑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아 졌다. 그런 미숙함과 어리석은 선택들은 그만 후회하고 싶고

'결국 톰과 서머는 행복하게 결혼하여 잘 살았답니다.' 혹은 '톰과 어텀이야말로 정말 평생의 짝이 되었답니다.'라는 결말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다. 이들의 어긋날 타이밍과 미숙함을 나는 다 배웠고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함 때문인 것도 같다.

스토리를 알고 결말을 이미 알아도 여러 번 볼 수밖에 없는 영화, 500일의 서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