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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선샤인, 그대는 나아가시오 나는 한 걸음 물러나니

by 나댜나댜 2023. 9. 10.

출처 : 디시인사이드

 드라마명 : 미스터선샤인 (2018)

 

"누군가는 작금이 낭만의 시대라 하더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여 년의 시간을 돌려보면, 지금 당장 내가 총칼을 맞을지 모르고, 내일 아침에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잡혀갈 수 있다는

공포에 떨며 살아가던 시대였다.

편안히 내일 무슨 일이 있을까, 야근일까? 정도의 가벼운 고민을 하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억압과 통제를 받던 시기, 일제강점기이다.

미스터선샤인은 한 사람의 생애가 될 만큼 길었던 그 시대 안에서 각자 걷고 있는 인생들이 만나는 이야기이다.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추노에게 쫓겨 조선을 도망쳐 나와 미국 해병대 대위가 되어 돌아온 유진초이.

모두의 존경을 받는 선비의 손녀이자 독립투사였던 부모를 잃고 조선을 지키려는 노블 우먼 고애신.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두 남자까지, 각자의 길에서 걷다가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너무도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들이 결국 엮일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애신을 향한 사랑일지도, 고애신이 가는 길을 열망했는지도.

 

등장인물로 표현됐던 그 시대의 시대상, 신념, 법도, 운명

많은 장면들이 좋은 드라마였지만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츠다하사가 최유진을 알아보고 자기 군대를 끌고 미 공사관으로 쳐들어가려는 장면에서, 

일본인과 미국인 간에 통역을 위해 한국인인 임관수와 형기가 가운데 서 있게 된다.

서로의 입장을 표현하다가 결국 그 둘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결국 일본과 미국이 서로 총을 겨누자 그 통역관 둘이 넘어지며 서로 싸우는 걸 멈추고 겁먹는 장면이 나온다.

대국들의 사이에서 서로를 친미 친일을 하며 적대시하던 우리 조선의 백성들 같았다.

그리고 최유진, 구동매, 김희성의 캐릭터 설정이다.

그들의 특징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각자가 가질 사연과 아픔, 그들이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보인다.

 

최유진

최유진은 조선의 가장 부잣집의 노비로 태어나 자신의 어머니가 친일을 앞장서려던 어떤 양반의 눈에 들어

어머니와 아버지가 도망칠 작정을 하다가 들켜서 아버지는 매질로 맞아 죽게 되고, 어머니는 최유진을 도망치게 한 후

스스로 우물에 빠진다.

조선과 양반에 대한 뼛속 깊이 증오와 분노가 있는 어린 시절의 사연, 우연히 자신을 도와준 도공의 소개로

미국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도망쳐 간다. 

그곳에서 어리고 얼굴도 다른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 나라 사람이 되는 방법이었고,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어,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대위 자리까지에 오른다. 

영어, 한국어, 일어까지 모두 구사할 수 있고 타고난 지략으로 누구보다 유리한 신분과 능력으로 

자신이 도망쳐 나온 조선에 다시 들어온다.

자신이 가장 낮았고 힘없던 때에 있던 곳을 가장 힘 있고 유리할 때 돌아오는 감회가 어땠을까.

최유진의 심성이 고약하고 행동이 신중하지 못했다면 내 맘대로 하고 싶고 복수도 하며 강해진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며 다녔을 것 같다. (주인공이어서겠지만..)

그는 자신을 버렸던 조선에 돌아와, 조선을 구하려 애쓰는 어떤 양반 여성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남녀 간의 사랑이겠지만, 그 시대에 남녀 간의 낭만은 사치였던 것 같고. 서로의 가는 길의 방향이 같았고

서로 옳지 않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형성되며, 사랑이자 동지애를 강하게 느낀 것 같다.

 

구동매

구동매도 어린 시절은 최유진과 비슷한 시작을 겪는다.

노비보다 더 못한 백정의 자식. 조선의 모든 신분제도상의 가장 아래에서 태어나 그도 어머니에게 도망가라는 외침을 듣고 

조선을 도망쳤지만, 둘 다 어머니가 가장 수세에 몰렸을 때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외친 말이었어도 결이 달랐다.

구동매는 이미 청소년의 나이에 이미 백정이라는 삶에 지긋지긋함을 느낀 상태였고, 구동매의 어머니는

구동매가 부디 나가서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보다는, 이 지긋한 삶에 너까지 있어서 힘드니 제발 나가달라는 외침이었다.

결국 가출 겸 도망쳐 나온 집. 어머니의 살인에 다시 도망쳐야 하는 신세가 된 동매는 

한 양반 소녀가 자신의 가마 안에 숨겨주어 도망을 칠 수 있게 된다.

누구보다 그 양반 소녀가 고맙고 은인이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동매는  세상에 이골이 나있었고, 자신들을 무시하던 평민들보다 훨씬 높은 계급의 양반의 호의가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남긴 한마디.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

이 날은 아마 동매가 평생 후회하게 되는 날이자, 이 말을 들은 애신이 평생의 자신의 길을 만들게 되는 터닝포인트가 되는 날일 것이다. 

조선에서 최하의 신분의 남자와 최상의 신분의 여자가 만나 서로의 삶을 비트는 날이다.

동매는 그길로 도망쳐 나와 일본에서 검술을 닦고 무신회에 들어 한성 지부장 자리까지 올라 조선에 오게 된다.

조선을 나와 높은 위치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는 큰 맥락에서는 유진과 비슷한 행보이다.

군인도 무신회도 결국 무력이라는 힘을 사용한다는 건 같지만, 유진은 동매보다는 조금 합법적이고 규칙과 절차가 있는 무력이라면

동매는 밝은 면 뒤에 드리운 어두운 자리에서 무력을 행사하고, 무법하기에 모두가 그와 그의 행동을 쉬쉬하며 겁내는 힘을 가졌다.

유진에게는 내일을 봐야 하는 일이 있다면 동매에게는 내일이 없는 정도의 업무 처리랄까.

그렇게 조선의 어두운 밤을 호위하던 도중 애신과 다시 재회하게 된다.

 

김희성

김희성은  앞의 최유진과 구동매와는 너무나 반대의 삶을 살았다.

부잣집에 남부러울 것 없는 양반집에서 태어나 권력을 잡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할아버지는 권력과 생존을 위해서는 대의와 옳은 길은 안중에 없는 성품이었고 

그에 비해 아들인 자신의 아버지는 출세나 학문에는 영 가능성이 없었기에 한심하게만 대했다.

할아버지는 그래서 자신에게 더 많은 기대를 했고,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렇지만 희성은 그 모든 게 달갑지 않았다. 유학에서도 자신의 잘생긴 외모로 연애하기 바빴고 한량처럼 살았다.

자신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약속된 혼인이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모두 정해놓은 계획을 따르는 게 싫었던 것일까

10년을 미루게 된다.

어느덧 돌아온 조선, 그래도 양가의 법도는 지켜야 했기에 정혼자에 집에 찾아가고 진작에 조선에 오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출세와 친일에 이골이 나있던 희성이 본 애신은, 미모도 미모지만 본인의 집안에서 강요하는 방향이 아닌 정말 옳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기에 반한게 아닌가 싶다.

애신의 행보가 서서히 밝혀질 때마다 희성은 앞장서 도움을 주는 역할보다는, 조용히 자신의 지위와 유명세를 활용하여

다른 방향의 조력자가 되어 준다.

어렸을 적부터 부잣집에 태어나 구김살 없이 살아와서 누구보다 밝고 한량 같은 삶을 살았지만

애신의 행동을 보고 각성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문무 중에 문을 사용하여 애신과 의병들의 활동에 도움을 주며

최유진과 구동매와 같이 처절한 삶을 살진 않았지만, 결국 자신의 제대로 된 꿈도 꿔보지 못하고, 자신만이 가질 수 있었던

정혼자인 애신도 포기하며 호화로움 속에 고독함만 삼키는 삶을 산다.

 

캐릭터가 가진 히스토리와 역사적인 음울함과 낭만이 만든 가장 애절한 사랑이자 역사이야기

 

그대는 한 걸음 나아가시오, 나는 한 걸음 물러나니.

모든 걸 가지고 조선에 다시 들어왔지만, 결국 군인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이도 저도 아닌 미국인이 되어

애신과 애신의 뜻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한 최유진.

뜬금없는 희생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방향성이 흘러가는데 그 흘러가는 길이 맞았기에 

모두가 그 방향을 알기에, 더 가슴 아팠던 것 같다.

매번 봐도 마음이 아픈 엔딩이고 최유진을 더 의미 있는 캐릭터로 만든 마무리인 듯하다.